나는 경계인이다. 장애인이면서 때때로 비장애인의 생각을 공유하는. 그래서 가끔 온라인에 기고하는 글 창고 이름도 골디락스라고 지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온도인 그 지점이 나다.
검색창에 '지하철'과 '장애'를 붙이면 백발의 휠체어를 탄 활동가 사진과 함께 장애인 이동권 시위와 관련된 기사가 봄날 벚꽃 날리듯 흐드러지게 쏟아진다. 욕설에 심지어 폭행도 당하면서도 혼잡한 출근길 시위를 고수하는 그들을 볼 때면 경계인 심리가 작동된다.
'오죽하면 저럴까'라는 생각과 '목구멍이 포도청인 직장인들의 발목을 잡지는 말지'라는 상반된 두 생각이 맞선다. 이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서 미지근한 심장을 유지하려 애쓰는 편이다.
나는 대학교 2학년, 그러니까 21살까지는 비장애인이었다. 심지어 조금만 수틀려도 욱해지는 다혈질 운동선수였다. 한순간에 목이 부러졌고, 1년여 중환자실과 병실을 오가면서 삶을 연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할 수 있던 것들은 아예 할 수 없게 됐다. 장대비에 맨홀 구멍으로 물이 솟듯 과격함은 애써 참는 울분을 비집고 솟았다. 타인의 친절이 오지랖으로, 위로가 불쌍함으로 포장된 연민으로 변질 됐다. 날을 세웠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는 30년쯤 지나니 안정을 찾았다.
그 무렵 국회 앞 차가운 철제 사다리와 쇠사슬로 꽁꽁 묶인 채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있는 활동가들을 보았다.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동물도 아니고, 아니 동월에게도 가혹하다. 그들 스스로 묶었다 보긴 어려운 그들의 심한 장애가 한참 눈길을 떼지 못하게 잡았다. 묶던 사람들이나 묶이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공감되지 않는 일에 소름 돋았다. 그때부터 과격하지 않은 삶을 살려 애쓰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사람들은 지각할까 발을 동동 구르며 왜 하필 출근 시간에 지x들이라며 한목소리로 활동가들을 천하에 무뢰배라 쌍욕을 해댄다. 이런 볼멘 목소리가 복지현장이라고 다르지 않고 그 속에서 난 못 들 척 커버링을 할 수밖에. 하지만 그들이 참기 힘든 그 5분은 장애인들이 인내한 몇 십 년 세월이었음을, 또 그 복잡한 출근 시간에 맞추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기에 새벽같이 나서는 이유를 알 턱이 있을까.
그 혼잡한 출근시간. 내 옆에 유모차가 있는지 휠체어가 있는지 이동 보행기를 끄는 어르신이 있던 적이 있는지 그들은 기억해 낼 수 있을까. 그 복잡한 시간에 함께 옆자리에 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사람들의 마음은 헤아려 본 적은 있을까. 수많은 장애인도 회사원이고 출근을 하는데 대중교통임에도 지하철이고 버스에서 왜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을까? 출근길 그들 옆자리에 장애인을 볼 수 없는 건 당신의 편한 출근을 바라는 그들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 세상에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출근 시간 5분을 불편하게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도록 희생을 강요한 국가가 문제다. 애초에 누구나 편하게 이동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5분을 불편하지 않아도 된다. 장애인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불편한 수십 년을 모른 채 했던 모두의 문제다.
경계에 서보니 공평보다는 공정에 맞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같은 불편이라면 무엇이 더 인간의 존엄에 가까운가가 기준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이동에 대한 자유가 훨씬 불편한 이들의 삶이 척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비 오는 오후, 나갈 일에 창밖만 보다 뜬금없이 생각이 들어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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